교황 레오 14세, “21세기형 포퓰리즘 교황”인가 – 대중영합 행보의 명암
*2025년 5월 교황좌에 오른 레오 14세(본명: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는 첫 미국인 교황이라는 타이틀로 전 세계적 이목을 끌었다. 그는 즉위 직후부터 SNS에서 대중과 직접 소통하고, 이민·기후·총기규제 등 정치사회적 현안에 과감히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며 ‘행동하는 교황’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러한 행보가 영적 권위를 앞세운 전통적 교황상과는 다른, 이른바 **“포퓰리즘 교황”*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본 기사에서는 레오 14세의 주요 활동을 중심으로 그의 리더십을 비판적 시각에서 조명한다.
SNS와 감정 호소… 교황인가 정치가인가?
레오 14세는 교황 선출 이전부터 트위터(X)에서 활발히 활동한 ‘온라인 친화형 인물’로 꼽혔다. 추기경 시절부터 이민자 인권, 총기폭력, 인종차별 등에 대해 정서적이고 직설적인 메시지를 공유해왔다. 특히 2023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강제추방 조치에 대해 “양심은 괴롭지 않은가”라는 트윗을 통해 양심에 직접 호소한 언어는 사실상 대중 정치인의 어법과 유사하다.
2025년 부통령 J.D. 밴스가 “가톨릭은 가족부터 돌보라고 가르친다”며 반이민 논리를 펼치자, 레오 14세는 “예수는 사랑에 순서를 매기지 않았다”고 반박한 발언도 대표적이다. 간결하고 선동적인 메시지, 신속한 반응, 대중적 감정에 대한 직접 호소는 전통 교황의 신중하고 간접적인 화법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실제로 SNS 활동 이후 레오 14세의 온라인 팔로워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의 발언은 언론에 즉각 인용되며 “영적 지도자”보다는 “여론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NBC뉴스는 그의 정치적 성향을 단정하긴 이르다고 보도했지만, “영향력 있는 여론 주도자”라는 인식이 교황청의 정체성과 충돌할 소지를 안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정치사회 이슈 전면 대응 – 교황직의 확장인가, 월권인가?
레오 14세는 이민 문제, 기후 위기, 인종차별 등 현대 사회의 핵심 현안에 대해 전면적이고 공개적인 입장을 밝히며, 종교와 정치의 경계를 허무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멕시코 국경 장벽에 반대하는 발언은 물론, 반이민 성향의 정치인들을 향해 “교리를 왜곡한다”고 반박하는 모습은 ‘종교 지도자’라기보다 ‘시민운동가’나 ‘사회 개혁가’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즉위 첫 강복 연설에서 프란치스코 전 교황의 “벽이 아닌 다리를 놓자”는 발언을 인용한 것도 상징적이다. 이는 정치적 상징성을 띤 메시지를 대중에게 선명하게 전달함으로써, 교황이 단순한 영적 목자가 아니라 시대의 도덕적 어젠다를 이끄는 주체임을 강조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교황직의 본령인 신학적 중립성과 초월성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실제로 미국 보수 가톨릭 진영과 우파 정치세력은 레오 14세를 “좌파 교황”, “정치적 행위자”라며 경계하고 있으며, 바티칸 내부에서도 “과도한 정치 개입이 교회의 권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교리보다 여론? ‘선택적 침묵’이 드러내는 이중성
레오 14세는 가톨릭의 전통 교리를 공식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낙태 반대, 동성혼 반대, 여성 사제 불허 등 주요 교리에서는 보수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눈에 띄는 것은 교황 즉위 이후 이러한 사안에 대해 의도적으로 침묵하거나 강조를 피한다는 점이다.
대신 이민자 보호, 기후변화 대응, 인종차별 반대 등 대중적 공감이 큰 이슈에 집중하며 **“인기 있는 메시지만 내세운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신학적으로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는 회피하고, 대중적 지지가 가능한 주제만 선택한다는 이 같은 전략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적 리더십의 특성과도 닮아 있다.
이러한 선택은 신중한 정치적 계산이자 교회 내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도 읽히지만, 결과적으로는 “영적 일관성보다 여론을 앞세운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전통 회귀와 개혁의 줄타기 – 이중 전략의 정치성
의전과 상징의 영역에서도 레오 14세는 교묘한 줄타기를 보여준다. 프란치스코 전 교황이 탈권위적 이미지로 상징적 혁신을 시도했다면, 레오 14세는 붉은 모제타와 전통적 교황복을 입고 공식석상에 등장하는 등 의전적 권위의 회복을 시도했다. 교황궁으로의 거처 복귀 등은 바티칸 내 보수파를 안심시키는 제스처로 해석된다.
그러나 동시에 진홍색 교황 구두 대신 검은 평상화를 고수하고, 프란치스코의 묘소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 등을 통해 개혁 성향 대중의 지지도 유지하려는 균형을 보여준다. 이는 결국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을 동시에 끌어안기 위한 정치적 이미지 관리로 읽히며, 교황직이 통합의 자리인지 인기도 경쟁의 무대인지에 대한 의문을 낳게 한다.
통합의 리더인가, 여론 관리 전문가인가
프란치스코 전 교황과 비교할 때 레오 14세는 약자 보호라는 가치에서는 유사하지만, 방식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프란치스코가 즉흥적이고 소탈한 스타일이었다면, 레오 14세는 사전 준비된 원고와 격식을 갖춘 연설을 통해 실수 없는 메시지 통제를 추구한다. 이는 PR 측면에서 효과적이지만, 진정성과 자발성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또한 갈등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전임자가 때때로 보수파와 정면 충돌했던 반면, 레오 14세는 좌우 양 진영을 달래며 통합을 지향하는 정치적 중재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접근은 교황이 본질적으로 ‘신앙의 증언자’인지, 아니면 ‘사회적 중립자’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제기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