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십 년간 이어진 아동 학대 은폐, 교회 권위주의 구조의 민낯 드러나
■ 40년 묻혀온 어둠이 드러나다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가 오랫동안 감춰온 아동 학대 사건이 2024년 뒤늦게 세상에 드러나며 영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사건의 중심에는 평신도 지도자 **존 스미스(John Smyth)**가 있습니다. 그는 1970~80년대 영국과 아프리카에서 청소년들을 신앙 훈련한다는 명목으로 수십 명의 소년들에게 잔혹한 신체적·성적 학대를 자행했습니다.
스미스는 법조계 출신으로, 한때 성공회 내부에서 신망받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도’는 사실상 폭력이었고, 피해자 중 일부는 극심한 트라우마와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 교회는 알면서도 침묵했다
2024년 공개된 **251쪽짜리 독립 조사 보고서(Makin Report)**에 따르면, 성공회 지도부는 이미 1982년 스미스의 학대 행위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단은 이를 외부에 알리기는커녕, 스미스에게 조용히 영국을 떠나도록 지시했습니다.
결국 그는 짐바브웨로 건너가 같은 범죄를 반복했고, 수십 명의 새로운 피해자가 생겼습니다.
교회 지도부의 선택은 ‘정의’가 아니라 ‘은폐’였습니다. 교회의 명성과 성직자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어린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묵살되었습니다.
■ “대주교도 알고 있었다”… 도덕적 책임론 확산
이번 사건의 후폭풍은 영국 성공회의 최고 지도자에게까지 번졌습니다.
2024년 11월, 저스틴 웰비(Justin Welby) 캔터베리 대주교가 전격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조사 결과, 웰비 대주교가 2013년 이미 스미스의 학대 사실을 보고받았음에도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웰비는 “당시 경찰이 이미 조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무대응이 11년간의 정의 지연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보고서는 “그가 즉시 신고했다면, 이후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피해자들 “이제야 변화의 기회”
웰비 대주교의 사임 소식이 알려지자, 피해자 단체들은 **“이제야 교회가 변할 기회를 얻었다”**며 안도와 분노가 뒤섞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피해자는 B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우리는 ‘가해자를 용서하라’는 말만 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교계 일각에서도 “교회가 더 이상 피해자 위에 군림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 주교는 웰비의 사임을 두고 “지도자의 책임 부재가 교회의 도덕적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지적했습니다.
■ 구조적 문제: “성직자 중심주의와 침묵의 문화”
영국 정부 산하의 **아동성학대 독립조사위원회(IICSA)**는 2022년 이미 성공회 내부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성공회 내에 성직자에 대한 맹목적 복종 문화가 존재하며, 피해자보다 가해 성직자를 보호하려는 경향이 뿌리 깊다고 비판했습니다.
스미스 사건은 그 구조의 전형적인 사례였습니다.
- 교회는 내부 평판을 우선시했고,
- 지도부는 권위 유지에 급급했으며,
- 투명한 신고 체계나 피해자 보호 장치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러한 폐쇄적 권력 구조가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피해자에게는 ‘평생의 고통’을 남긴 셈입니다.
■ 교회의 개혁 약속, 그러나 회의적인 시선
웨비 사임 이후 성공회는 “피해자 지원과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개혁 조치”를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여론은 여전히 냉담합니다. “수십 년간 반복된 은폐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 없다”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사설을 통해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성공회는 더 이상 과거의 명예로운 교회가 아니다. 권력에 매몰된 신앙의 이름으로, 수많은 어린 생명을 희생시켰다.”
■ “이건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영국 성공회의 도덕적 실패에 그치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회뿐 아니라, 개신교 내부에도 아동 보호의 허점과 권위주의적 문화가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교회의 명예를 이유로 사건을 덮거나, 가해자를 다른 지역으로 전출시키는 행태는 이미 전 세계 여러 교파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병폐입니다.
신앙 공동체의 이름으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구조는 결국 ‘거룩함’을 가장한 폭력일 뿐입니다.
■ 결론: 권위보다 양심이 우선되어야
웰비 대주교의 사임은 하나의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권력의 책임을 묻는 시작점입니다.
교회가 진정으로 신뢰를 회복하려면, 과거를 미화하거나 감추는 대신 피해자 중심의 정의와 투명한 구조 개혁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영국 성공회의 이번 사태는 묻습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누가 보호받고, 누가 침묵당했는가?”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지 않는 한, 교회의 미래는 여전히 어둠 속에 머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