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교리 갈등과 반지성주의, 한국 개신교의 두 얼굴
한국 개신교가 중대한 기로에 섰다. 외형적 성장은 멈춘 지 오래고, 내부에서는 교단 분열과 신학 갈등이 이어지며 신자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일부 교회에서 뿌리내린 반지성주의 문화는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개신교는 스스로 무너지는 길을 선택한 셈”이라고 경고한다.
■ 4만 7천 개 교파? 교리 분열이 낳은 신앙의 혼돈
‘성경으로 돌아가자’며 출발했던 개신교는, 아이러니하게도 성경 해석의 다양성이 분열의 불씨가 됐다. 실제로 세계 기독교 단체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개신교 교파 수는 2023년 기준 47,300여 개. 2050년엔 64,000개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신앙보다 분열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이다.
한국의 장로교 역시 해방 직후부터 교권 다툼과 성경 해석을 둘러싼 갈등으로 수차례 분열을 겪었다. 예장 합동과 예장 통합으로 갈라진 1950년대 이후, 수십 개에 이르는 소교단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우리가 정통이다”라는 주장은 길 건너 교회에서도 반복된다. 강단에서 ‘참된 복음’을 외치지만, 다른 교회에선 전혀 다른 가르침이 전해진다. 교인들 사이에 혼란과 회의가 쌓일 수밖에 없다.
■ “질문하지 마라”… 신앙을 삼킨 반지성주의
개신교 내부의 또 다른 병폐는 반지성주의 문화다. 비판적 사고와 지적 탐구를 신앙의 결핍으로 간주하고, 무조건적인 순종을 미덕으로 여기는 태도다.
“묻지 말고 믿어라.”
이는 단순한 권유가 아니라, 어떤 교회에서는 신앙의 기준처럼 작동한다. 의심은 죄악시되고, 목회자의 말은 성경 다음가는 절대적 진리로 여겨진다.
한국교회의 반지성주의는 근본주의적 선교사들의 영향 아래 형성되었다. 성경 무오설, 문자주의 해석이 정통으로 자리잡으면서 합리적 토론과 신학적 탐구는 배제되었다.
그 결과, 지적 갈증을 느끼는 신자들은 몰래 신학 서적을 읽거나 외부 공부 모임에 참여하지만, 교회 안에서는 “믿음이 약하다”는 핀잔을 듣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 팬데믹과 극우, 교회는 왜 음모론의 진지가 되었나
반지성주의는 단순히 교회의 내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와의 괴리라는 훨씬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당시, 극우 성향의 일부 교회들은 방역 지침을 무시하고 음모론을 퍼뜨리며 집단감염의 진원지가 됐다.
사랑제일교회는 대표적인 사례다. 방역 당국의 역학조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을 뿐 아니라, “정부가 생화학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허무맹랑한 주장까지 퍼뜨렸다. 신앙을 빙자한 광신이 공공의 안전을 위협한 셈이다.
기독교 시민단체 평화나무는 “반지성주의가 강화될수록 개신교 극우세력의 폭력성도 증가한다”고 경고했다.
■ 교회는 왜 청년에게 외면당했는가
분열과 반지성주의는 결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 추락으로 이어진다.
2023년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교회를 신뢰한다”는 국민은 21%에 불과했다.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무려 74%에 달했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 하락이 아닌, 교회의 존립 가능성 자체에 대한 경고음이다.
특히 청년층의 이탈은 치명적이다. 교리적 혼란과 지적 갈증, 권위주의적인 문화에 염증을 느낀 이들은 점점 교회를 떠난다. 교회는 늙어가고, 교세는 줄어들며, 외부 사회와는 점점 동떨어진 세계에 갇혀간다.
■ “스스로 무너지는 교회,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어떤 목회자는 “사유하지 않는 교회는 자멸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실제 한국 교회의 극단적 사례를 볼 때, 분열과 맹신이라는 이중고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개신교는 더 이상 미래 세대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냉혹한 분석이 잇따른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덮는 종교는 진리가 아니라 망상의 집단이다.”
개신교의 지금 모습은 신앙의 본질을 되묻기보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맹신을 강요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과연 진짜 교회인가?